도입부: 자유롭고 평화로웠던 프리랜서의 삶

저는 31세,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남성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지는 7년 정도 되었고, 소규모 출판사나 게임 회사, 브랜드들과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며 나름 안정적으로 수입을 이어왔습니다.

수입이 많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시간의 제약 없이 살아간다는 만족감은 제게 아주 컸습니다. 평일 낮에 카페에서 스케치하고, 주말엔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는 일상. 조용히, 제 속도대로 살아가는 삶이었죠.

결혼도 그 시기에 했습니다. 상대는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고, 예술가의 삶을 이해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혼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전개: 이혼, 그리고 갑자기 떠안게 된 7,800만 원의 빚

결혼 생활은 2년 정도밖에 가지 않았습니다. 성격 차이, 수입 불안정, 가치관의 간극…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합의 이혼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문제는 이혼 이후였습니다. 당시 제가 운영하던 공동 명의의 전세 계약과 소액의 부채 정산, 위자료 등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금전적 부담이 급격히 커졌습니다.

그 금액이 약 7,800만 원. 은행에서 신용대출로 일부 해결했고, 생활비 부족은 카드론으로 돌렸습니다. 처음엔 “몇 년이면 갚을 수 있겠지” 싶었는데, 프리랜서 수입은 들쭉날쭉했고, 예상보다 훨씬 버거웠습니다. 일은 계속 했지만, 생활은 점점 궁핍해졌고, 작업에도 집중이 안 되기 시작했죠.

그렇게 3년 반, 늘어나는 이자와 압박 속에서 몸과 마음이 점점 무너져갔습니다.

위기: 붓조차 들기 싫던 어느 날

개인회생을 결심하게 된 건 어느 겨울 아침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 “요즘 그림은 잘 그려?”라는 말에 대답을 못 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어요. 나는 지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구나. 가장 좋아했던 걸 그만둘 만큼, 지금의 내 삶은 무너졌구나.

그날, 서랍 속 대출 명세서를 꺼내 놓고 펑펑 울었습니다. 감추고 숨기던 현실을 마주한 거죠. 이후, 인터넷으로 개인회생에 대해 검색하고, 상담 신청을 했습니다. 상담실 문을 열던 그 순간, 아직도 기억납니다.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내 그림 인생이 끝난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상담사 분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분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셨고, "예술가 분들도 많이 오신다"는 말에 조금씩 마음이 풀렸습니다.

해결: 개인회생 절차와 다시 그려가는 삶

서류 준비는 생각보다 까다로웠습니다. 프리랜서이다 보니 일정한 소득을 증명하기 어려웠고, 수입 증빙을 위해 계약서, 세금 신고 내역, 거래 내역 등을 꼼꼼히 모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법원 인가까지는 약 5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최종적으로 월 31만 원씩 3년간 상환하는 변제계획안이 인가됐습니다. 이 금액은 제 평균 수입 대비 적절한 수준으로 책정된 거였고, 무엇보다 ‘이걸 지키면 채무가 정리된다’는 명확한 목표가 생겨 마음이 정리됐습니다.

법원 출석도 했습니다. 너무 긴장해서 잠도 못 자고 갔는데, 판사님이 제 사정을 묻고 고개를 끄덕이며 “회생은 기회입니다”라고 말해주셨습니다. 그 말이 그날 하루 종일 마음속에 맴돌았습니다.

결말: 다시 그릴 수 있는 오늘, 그리고 앞으로

지금은 변제 2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돈은 여전히 빠듯하지만, 정기적으로 갚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제 그림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최근에는 개인 프로젝트를 하나 완성해서 온라인 전시도 열었습니다. 예전보다 더 단단해진 기분입니다.

미래엔 제 이름을 건 작품집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다시 빚에 쫓기는 삶은 절대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 혹시 저처럼 예술가이자 채무자라는 이중의 무게를 견디고 계시다면 꼭 전하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내 삶을 되찾기 위한 정당한 선택입니다. 저도 그랬고, 여러분도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